영화 '귀멸의 칼날-무한성편'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저는 평소에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좋아해서 대부분 챙겨보는 편이지만, 무사가 등장하는 영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특히 피가 낭자한 장면이 많은 작품은 잘 보지 않는데요. 귀멸의 칼날 시리즈 역시 몇 번 접하긴 했어도 칼로 베이고 피가 흩뿌려지는 연출에 내 살이 아픈거 같아 크게 흥미를 느끼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도 볼까 말까 망설였죠.
그런데 개봉 후 올라오는 관람평이 예상 외로 호평 일색이라,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정부지원 국민 영화관람 할인권'이 아까웠기도 했고요.ㅋ
관람결과는...
의외로 너무 재밌게 보고 왔어요. '귀멸의 칼날'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봤는데도, 3시간에 가까운(155분) 러닝타임이 언제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집중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액션 판타지로만 보기에는 영화 속에 담긴 일본 특유의 정서와 전통문화 요소가 상당히 깊이 배어 있더군요.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스토리와 배경, 그리고 ‘혈귀’, ‘귀살대’ 같은 설정이 어떤 일본 문화와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영화의 시대적 배경 – 다이쇼 시대의 불안과 변혁
귀멸의 칼날 시리즈는 '다이쇼 시대(1912~1926)'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쳐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있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과 봉건적 질서가 잔존하던 시기입니다.
- 근대와 전통의 충돌 : 철도·전기·총기 같은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도시 문명은 발전했지만, 농촌 지역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생활 방식과 민속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 사회 불안 : 1차 세계대전 후 경기 불황, 빈부격차, 대지진 등으로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러한 시대적 불안이 ‘혈귀’라는 상징적 존재로 투영됩니다.
- 다이쇼 낭만파 : 한편으로는 예술과 문학에서 서양 문화를 수용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귀멸의 칼날 속 복식·건축물·무기 디자인에서도 이 시대 특유의 혼합 양식이 드러납니다.
2. 혈귀(鬼)의 문화적 뿌리 – 일본 요괴 신앙과 불교의 혼합
혈귀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요괴 전승과 불교적 업보 사상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 요괴·오니(鬼) : 일본 민속에서 ‘오니’는 인간을 잡아먹는 사악한 존재로, 종종 질병·재해·악행의 의인화로 표현됩니다.
- 불교적 영향 : 불교에서는 ‘귀(鬼)’를 지옥이나 아귀도(餓鬼道)의 중생으로 설명하며,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혼이 변한 모습으로 봅니다. 영화 속 혈귀들의 과거 서사는 이런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 치유 불가능한 악 vs. 구원 가능한 악 : 일본 창작물에서 ‘오니’는 무조건 악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일부 혈귀의 비극적인 과거를 보여주며 인간성과 악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3. 귀살대의 설정 – 무사도(武士道)와 집단 충성심
귀살대는 혈귀를 사냥하는 조직으로, 에도 시대 사무라이 문화와 닌자 집단 구조를 계승한 설정입니다.
- 무사도의 가치관 : 사명감, 명예, 주군에 대한 충성,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등이 귀살대원의 행동 원칙에 반영됩니다.
- 계급 구조 : 하급 검사에서 ‘주(柱)’에 이르는 계급 체계는 무사 계급제와 닮아 있습니다. ‘주’라는 호칭은 실제 봉건 일본의 번주(藩主)에서 비롯된 것으로, 리더를 뜻합니다.
- 집단주의와 희생정신 : 일본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인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정신이 귀살대 이야기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4. 영화 속 일본 정서 – 와비사비(侘寂)와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귀멸의 칼날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특유의 정서적 미학이 서사와 연출에 깊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 와비사비 : 불완전함·덧없음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 캐릭터들이 상처를 입고도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 폐허가 된 전장 속 잔잔한 장면에서 느껴집니다.
- 모노노아와레 :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틋함. 적과의 사투 속에서도 혈귀의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슬픔이 이를 상징합니다.
- 죽음을 통한 완성 : 일본 문화에서는 죽음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고, 사명을 다한 결말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합니다. 이는 귀살대 캐릭터들의 선택과 희생을 통해 표현됩니다.
관람후기
2025년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단순한 액션 판타지를 넘어, 일본의 전통문화·역사·정서가 깊게 스며든 작품입니다.
다이쇼 시대라는 혼란기, 요괴 전승과 불교적 세계관, 무사도의 가치관, 그리고 와비사비와 모노노아와레 같은 미학까지... 이 모든 요소가 영화의 밑바탕을 이룹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영화를 보면, 화려한 전투 장면 뒤에 숨은 상징과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시대와 사회,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 것이 바로 귀멸의 칼날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인 것 같아요.
탄지로와 결투를 벌인 혈귀 '아자카'에게는, 혈귀에게 연민이 느껴지게 하는 어색하고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작화와 연출이 화려해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점도 매우 만족스런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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