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남한산을 중심으로 축조된 산성으로,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병자호란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청나라에 40일간 항전하였던 곳입니다. 1950년대에 공원화되고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받아 201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남한산성>
주소 :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 23
남한산성 둘레길은 5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코스(약 3.8km / 1시간 20분) : 산성로터리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로터리(0.7km)
- 2코스(약 2.8km / 1시간) : 산성로터리 - 영월전(0.4km) - 숭렬전(0.2km) - 서문(0.7km) - 수어장대(0.6km) - 산성로터리(0.9km)
- 3코스(약 5.7km / 2시간) :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동문(1.0km) -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4코스(약 3.8km / 1시간 20분) : 산성로터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로터리(0.6km)
- 5코스(약 7.7km / 3시간 20분) :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0.4km) - 동장대터 - 북문(0.4km) - 서문(0.4km) - 수어장대(0.4km) - 영춘정(0.4km) - 남문(0.4km) - 동문(0.4km) -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저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남한산성 주변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공사 현장 주변으로 얽혀있는 차량들에 놀라 어버버하는 사이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유턴하는 곳까지 한참인데다 차들이 많아서 30분이나 더 돌아왔지 뭐에요;;
시작부터 꼬이다 보니 기분이 살짝 다운될 뻔 했는데, 다행히 이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남한산성 풍경을 보는 순간 마음이 풀렸습니다.^^
저희는 남한산성 제1호 남문주차장에 주차했어요. 평일이라 그런건지 주차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한산성 내에는 여러 곳의 주차장이 있으니 코스별로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하시면 될 것 같아요.
주차비는 평일 3천원, 주말과 공휴일은 5천원입니다. 주차비 할인혜택이 있으니 해당하시는 분은 증빙서류 챙겨가세요~


아래는 저희가 둘러본 경로입니다.원래 계획은 제1호 남문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남한산성행궁과 수어장대를 먼저 둘러보고 서문, 북문을 거쳐 5코스 둘레길을 따라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시간을 많이 지체한대다가,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걷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산책 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으로 음료수 말고는 별다른 간식거리를 챙겨오지 않아서 배가 고픈 이유도 있었습니다.ㅎ
그래서 남문방향 코스와 벌봉은 나중에 다시 둘러보는 것으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 날의 남한산성 여행을 마쳤습니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남한산성행궁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행궁 옆에 있는 410년(지정일자 기준) 된 보호수에요
남한산성에는 오래된 보호수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둘레길로 접어들자 짙은 녹음이 깔린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걸음이 더욱 더 가볍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땐 숨이 차오르고 땀이 베어나오지만 시원한 그늘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둘레길 중간 중간에 코스를 알려주는 푯말이 세워져 있어요.

수어장대와 청량당에 도착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청량당이 먼저 보입니다. 자물쇠가 걸려 있어서 내부는 볼 수가 없었어요.
청량당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장군과 그의 부인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입니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습니다. 이회는 죽을 때, 자신의 죄가 없으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라 예언을 했는데 과연 매가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해요.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습니다.
원래의 청량당은 6.25 전쟁 때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에요. 서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므로 청량당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입니다.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해요.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입니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습니다.

수어장대를 감싸고 있는 외벽 모서리에 큰 바위 하나가 벽의 일부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매바위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남한산성 동남쪽 축성 책임자였던 이화장군이 죽을 때, 그의 예언대로 날아든 매가 이 바위에 앉았다고 해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매바위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매바위에 커다랗게 새겨진 암각문은 '수어서대'라고 쓰여있는 것인데, 지금은 거의 알아보기 힘듭니다. '수어서대'는 수어사가 서장대에서 군사를 지휘한다는 의미입니다.

수어장대를 나와 서문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제6암문(서암문)
암문은 적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입니다.
인조 15년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릅니다.


우익문(서문)
우익문은 남한산성의 서문으로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된 후부터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렸습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해요.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남한산성 서문 전망대
서문 전망대에 오르니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성벽 너머로, 우뚝 솟은 롯데타워와 송파구 시가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가지 뒤로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도 보이네요.
풍경이 너무 좋아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입니다.


서문전망대에서 성벽 아래 풍경을 한참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하다가 성곽길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전승문(북문)
남한산성의 북문입니다.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습니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남한산성 경치가 너무 좋아서 자꾸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됩니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성벽이 끝 없이 이어집니다.



성곽길을 걷다보면 군포지가 여러군데 보입니다.
군포란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를 말하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남한산성 내에 125개의 군포가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현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자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잠시 둘레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둘레길이 성벽길에 비해서는 좀더 편하게 걸을 수 있어요.

정말 가파른 성벽길이 나타났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릴만큼 경사도가 가파른 곳인데요.

올라갈 때는 심장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싶게 숨이 찼는데, 막상 올라오니 풍경이 너무 멋집니다.^^

제3암문

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운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 내에는 5개의 장대가 있습니다.
그 중 동장대는 남한산성의 동북쪽 모서리 해발 50m 지점에 세워진 곳으로, 18세기 초에 무너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지었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남한산성 여장
여장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입니다.
옛 성벽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나름대로의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장소입니다.




제2암문


장경사


송암정터
송암정은 우리말의 '솔바위 정자'라는 뜻입니다.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중 술에 취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불법을 설파하였습니다. 이때 그 무리 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 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하였는데, 그 후 달 밝은 밤에는 이곳에서 노랫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주필암에서 보고 벼슬을 내리며 옥관자를 붙여주라하여 '대부송'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현재는 송암정은 없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좌익문(동문)
남한산성 좌익문은 남문인 지화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가장 높았던 성문입니다.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성문을 지면에서 높여 계단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우마차를 이용한 물자수송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수문
해발 370m~400m 정도의 산 능선을 따라 축성된 남한산성은 지세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대부분 물이 이 수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간다고 해요. 산성 내에는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수문의 바닥과 천장에는 홈이 파여 있는데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쇠창살을 가로질러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수당
지수당은 1672년에 지어진 남한산성 안에 있는 정자입니다. '지수당'이라는 이름은 '군자는 백성들을 잘 포용하여 잘 살도록 길러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수당은 건립 당시에 건물을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으나, 1925년 대홍수로 인해 하나는 매몰되고 지금은 두 개만이 남아있어요.

제1남문 주차장으로 돌아와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이 날의 산책을 마무리 해습니다.
9km 조금 넘는 거리를 걸었고, 쉬는 시간과 사진찍는 시간 포함해서 3시간 40분 정도 걸렸어요.
다음에는 남문까지 포함해서 다시 한번 걸어봐야 겠습니다.^^
'쓰고 > 산책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화성] 화성시 가볼만한 곳 - 우리꽃 식물원 & 등고산 전망대 (0) | 2024.07.08 |
---|---|
[경기 오산] 수국이 아름다운 오산물향기수목원 (0) | 2024.07.04 |
[경기 화성] 남양읍 무봉산 둘레길 (0) | 2024.05.03 |
[경기 화성] 전곡항 - 서해랑 해상케이블카 - 고렴산 둘레길 (0) | 2024.04.29 |
[경기 군포] 군포철쭉축제 - 철쭉공원, 철쭉동산, 초막골생태공원 (0) | 2024.04.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