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정말 듣고도 믿기지 않는 끔찍한 사례들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와대 청원글의 동의자 수가 400만을 훌쩍 넘어서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성폭행·성착취 관련 사건들에 대한 국민 대부분의 정서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왜 자꾸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 대한민국은 성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아동 성 착취에 대한 그 처벌의 정도는 '관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인데요,
원래 '성착취'의 뜻은 성적인 어떤 행동이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강제로 하게 한 후,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얻어낸 결과물이 바로 '성착취물'인 것이죠.
하지만 '포르노'는 인간의 성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영화, 서적, 사진, 만화의 총칭으로, '성착취물'과는 그 결이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르노가 성착취를 야기시킬 수는 있지만, 그 둘을 동의어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동 성 착취물을 그저 '포르노'의 한 장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인 '야동'을 보는 수준이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음란과 혁명》의 저자인 권명아 교수는 ‘음란은 개념이 아니라, 풍속 통제라는 분류장치가 생산한 분류 태그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풍속 통제란 아주 쉽게 말하면 풍기문란을 단속하는 것인데, 이 풍기문란이란 것이 얼핏 보기에는 문란한 생활습관을 방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일탈의 책임을 사회적 약자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는 메커니즘입니다.
그러므로 음란물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피해자는 풍속을 직접 훼손한 사람, 즉 음란을 행한 행위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보니 가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감형을 받을 방법을 찾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으로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권명아 교수는, 아직도 우리 사회와 법체계를 지배하는 풍속 통제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동 성 착취는 우리나라의 발달한 기술과 결합하여 새롭게 진화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대화 삭제가 쉬운 채팅앱을 이용하여 버젓이 아동 성 착취 동영상이 거래되고 성매매를 제안하는 대화가 오가는 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처벌 수위도 마찬가지 입니다.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씨의 사례를 보면, 그는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항소심에서야 1년 6개월 실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겨우 1년 6개월을요;;;)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 청소년을 이용하여 음란물을 제공한 자는 최고 10년 형을 받습니다. 그런데 손씨는 왜 감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법원은 감형 사유로 ①범죄 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②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③혼인신고서를 접수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을 들었습니다.
하... 참... 왜 이렇게 다들 피의자의 창창한 미래만을 걱정해 주는 건가요? 피해자의 씻지못할 상처와 미래는 어쩌라는 건가요? 그리고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요?
이렇게 낮은 형량을 선고하거나 봐주다 보니까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을 안 하게 되고, 도리어 운이 없어서 걸렸다며 억울해 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대해 서지현 검사(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먼저 자꾸 언론에서 ‘야동음란물’ ‘야동’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요. 일반인에게 그냥 ‘야동’ 정도로 오해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야동 내지 음란물과 성착취물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 사건은 야동 사건이 아니라 성착취 인신매매 성폭력 사건입니다. 언론에서 제발 좀 유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한기 디지털성폭력아웃(DSO) 사무국장도 "언론이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쓰면 대중이 이를 그대로 인식하면서, 그것이 성폭력이고 성착취라는 인식도 흐려지게 된다"며 "특히 '음란'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뜻이 있어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은) 아동에 대한 부정적 함의를 갖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대체 표현을 사용하자는 권고가 이미 나온 상태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아동권리위원회가 '아동매매·성매매 및 아동음란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공표하면서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아동 성학대물'로 대체했습니다.
30년 전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가 죄를 뉘우친다면서도 "과거에 그 누구도 그것이 범죄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3년 문학상인 르노도상의 에세이 부분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83)는 인터뷰에서 "여행자로 (동남아시아에) 가면 경찰이 눈감아주는 가운데 소년 소녀들이 거리에서 옷깃을 잡아당긴다"면서 "당시에는 그게 그저 작은 일탈이라고 말했지 누구도 범죄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와 발맞춰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법제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속히 관련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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