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사회활동이나 생활방식이 급격히 달라지는 것을 보고 몇년전에 읽은 '면역에 관하여' 라는 책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공중보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책인데요, 그 주제는 요즘같은 때에 특히 더 되새겨 보아야 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워낙 건강하고 다부진(?) 체격에 참을성도 그다지 얄팍하지 않아서 건강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내 몸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염려에 압도되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가?’, ‘혹시 건강 염려증은 아닐까?’하고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기수첩에 나와 있는 예방접종표대로 때에 맞춰 꼬박꼬박 예방접종을 하는 것으로써 나의 불안을 어느 정도 잠 재웠고, 그런 스케줄들은 왠지 나를 괜찮고 세심한 부모의 범주에 들게 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를 한층 더 안심시켰습니다.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스케줄표는, 뭔가 느슨하면서도 그렇다고 나만의 시간이라고는 도통 나지 않는 '가정주부'라는 내 일상 속에서 그래도 내가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작동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언제나 내 개인적인, 혹은 나의 가족에 대한 범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거나 나 스스로를 위한……
하지만 이 책 '면역에 관하여'에서는 면역을 공동의 영역, 즉 사회적인 영역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 다소 생소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공중보건’이라…… 자주 들어왔던 단어이지만 한번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아이들 예방 접종을 하고, 유행병이 돌 때면 정정긍긍해 하는 반복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 행위는 그저 개인적인 생존의 의미 이상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이 책의 작가는 스스로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백신에 대한 고민 위에 지적인 호기심을 더해 내용을 전개해 갑니다. 백신의 부작용과 오해, 백신의 이점과 단점, 공중보건의 역사와 그 역사 속의 숨은 진실 등에 대해 다각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예방접종을 하긴 하면서도 막연하게 엄습했던 불안감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고, 이런 불안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객관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 너머, 편견의 씨앗에서 자란 것일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처음에는 '우한폐렴'이라고 명명되면서 우한에 사는 중국인들, 더 나아가 중국인들 전체에 대한 편견을 키웠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급격히 나오면서 국제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배척이 자라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이러한 상황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구요.
작가는 백신 반대자들이 왜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우리가 제각각 자기 몸만 잘 간수하면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는 독립성의 희망은 망상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몸은 애초에 수 많은 기생 생물을 담고 있는 ‘타자들의 집합’인 데다가 살갗은 침투성이 높은 불완전한 경계이므로,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몸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하는것이 작가가 책을 쓰게 된 목적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몸에 빚지고 있으며’, ‘면역은 우리가 공동으로 가꾸는 정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면역이라는 실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결국 면역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는 개인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작가는 그것이 '면역'이라는 개념을 그 개인이 어떤 은유를 통해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차이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면역을 (우리 몸이 바이러스나 병균들과 싸우는)전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애쓰는)교향곡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면역'이라는 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정의 내릴지는 다시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번 코로나 19도 면역력이 좋은 사람들은 독감같이 앓고 지나갈수도 있지만,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게는 치명적이어서 죽음에 이를수도 있는 바이러스니까요.
면역력 좋은 사람 또는 자신의 이해 관계 때문에 '나는 괜찮아', '나 하나쯤이야 뭐' 하고 생각할 경우, 그 사람이 퍼뜨리는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이번 코로나 19와 신천지의 사례를 통해서도 뼈져리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개인의 자유와, 사회에 대한 의무의 경계가 팽팽하게 대치되듯이 말입니다.
공중보건은 바로 사회의 면역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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